넌 항상 죽음까지 인정하는 삶을 살아왔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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여기 있는 세 개의 방들은 모두 에로스의 방. 너는 문턱을 넘어 방 속 작품들을 마주하고 있다. 너의 걸음이 머무는 곳에 더운 기운이 스친다. 그 곳에서 너의 존재는 자꾸 흔들리며, 불안정한 모습으로 서 있다. 작품을 보며 문득 불안감을 느끼고, 욕망에 휩싸이기도 하며, 죽음 충동에 포획되는 네 모습을 가만히 바라본다. 사물세계에 속해 있던 너는 이 공간에서 점점 해체되고 있다. 너와 작품, 공간, 그리고 우리 사이 경계가 거품처럼 흐릿해진다.
내가 널 알았던 순간부터, 너는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끊임없이 질문해왔다. 그 질문은 자꾸만 너를 현실의 저편으로 데려간다. 노동과 효율의 질서에서 비켜난 자리, 인간이 더 이상 사물로 전락하지 않는 공간으로. 너는 충동과 욕망이 용인되는 그 세계에 계속 문을 두드린다. 난 그게 무서우면서도, 너와 함께 잠시나마 신성을 맛보고 싶다.
〈after i die〉 앞에서 이 사유를 이어가고 있는 걸까. 금방 깨어질 것만 같은 인물이 고요히 널 바라본다. 회색조의 인물은 묽은 유화 물감으로 칠해져 있고, 표정을 알아볼 수 없는 흐릿한 얼굴은 검푸른 배경과 뒤섞여 구분이 어렵다. 이 방에는 언어 너머 극단의 감정을 분출하는 인물들이 서 있다. 각자의 내밀성을 발산하는 사람들은 꼭 너를 닮아 있다.
넘어간 건넌방에는 〈반성문〉 연작이 놓여있다. 일상의 파편들이 스며든 화면을 조용히 응시한다. 그림 속 사소한 장면들이 묘사하는 삶 속의 충동적인 순간들. 관성적으로 반복하는 습관 속 위태로움. 너는 바로 그 순간들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. 현실의 질서와 저편의 공간에서 흔들리는 작가의 모습이 너에게 말을 건넨다.
곧 조각이 네 곁에 머문다. 〈 〉을 바라보며, 너는 어딘가 에로틱한 감각을 느끼고 있는 것 같기도, 촉각적인 표면의 질감에 머물러 있는 것 같기도 하다. 스며드는 비, 지렁이, 화분 같은 존재들은 배경에 머무르지 않고, 감각의 표면에 닿아온다. 그것들은 너와 분명히 구분되는 타자인지, 혹은 이미 관계 안으로 스며든 무엇인지 쉽게 분간되지 않는다.
난 작품을 보는 너의 모습에서 마침내 인간이 무너지는 순간을 본다. 이성에서 탈피하는 인간. 균열의 틈을 열어두는 인간. 방과 방 사이 경계를 넘나들고, 이 작품에서 저 작품으로 시선을 옮기며 너는 감각의 차원에 스스로를 온전히 내맡긴다. 죽음의 기척, 조절할 수 없는 욕구, 타자의 존재가 네 안에 침입하려 든다. 넌 불현듯 두려워지지만, 내가 이미 여기 있다. 너의 일부인 내가.
이 곳에서 너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았을까?